여러분!?오늘이 어떤 날인지 기억하시나요?
37년 전 바로 오늘.
민주화운동이?일어난 날입니다.
민주주의를 위해서 절대 잊어서는 안 되는 날이죠.
그럼 오늘은 5.18 민주화운동 37주기를 맞이하여
5.18 민주화운동이 어떻게 발발했는지
간단히 알려드리도록 할게요!
이미지 출처 😕 hopergy
1979년 10월 26일
박정희 전 대통령이 김재규 중앙정보부장의 총에 맞고
사망한 것이 바로 5.18 민주화운동의 배경이 됩니다.
박정희 전 대통령이 사라진 자리를 보며
국민들은 민주주의를 향한 꿈을 꾸기 시작합니다.
하지만, 애석하게도 그 자리에는 전혀 다른 사람이 앉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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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박정희 전 대통령의 신임을 얻고 있던 전두환과 노태우 중심의?신군부 세력은
자신의 선임이었던 육군참모총장 정승화를 강제 연행하고
대통령이었던 최규하를 협박하여 정권을 잡게 되는데
바로 이 사건이?12·12사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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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민주주의를 기대했던 국민들은 실망을 할 수밖에 없었고.
이에 전두환 정권에 반대하는 시위가 일어나기 시작했습니다.
5월 15일에는 서울역에 20만여 명의 국민들이 모여
‘서울의 봄’이라 불리는 대규모 시위를 전개하기도 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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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전두환은 눈 하나 깜짝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곧바로 ‘화려한 휴가’라는 작전을 세우기에 이릅니다.
이 작전이 바로 광주로 공수부대를 보내
전두환 정권에 반대하는 시위대를 진압을 시도한 작전이죠.
그런데… 왜 하필 광주였던 걸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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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유는 간단합니다.
당시 계엄확대의 부당성을 주장하며
학생시위를 벌인 유일한 지역이 광주였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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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 18일 오전 전남대 정문으로 집결하기 시작한 학생들과
이를 막기 위한 계엄군 사이에 1차 충돌이 일어납니다.
학생들은 계엄군의 진압을 피해 광주 도심으로 피신하였고
시민들에게 계엄군의 만행과 계엄 확대 사실을 알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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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위는 고조되었고
전두환은 시위의 강도에 비례해 점점 광주를 고립시켜 나갔습니다.
그러나 일반 시민들까지 무차별적으로?두들겨 패고
심지어 총과 칼을 이용하여?잔인한 학살을?일삼는 계엄군의 모습을 보며
광주시민들의 분노는 극에 달하게 됩니다.
이미지 출처 😕 instiz
이후 시민들은 한마음으로 뭉치기 시작했습니다.
시위대는 계엄군의 무차별 폭력에 맞서기 위하여
무기가 될만한 것들을?모아 적극적으로 저항하였고,
시민들은 각종 생필품과 음식을 만들어?시위대에게 전달했습니다.
각각 자신만의 방법으로 시위에 참여한 것이라 볼 수 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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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시민은 계엄군으로부터 광주를 구하기 위해
도청을 중심으로 열심히 맞서 싸웠습니다.
하지만 ‘폭도 소탕 작전’이라는 이름 하에
도청에서 시위대를 겨냥한 무차별 총격과 폭력이 가해졌고
그렇게 광주의 수많은 청년과 시민들이 민주주의를 위해
싸우다가 최후를 맞이하고 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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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침내 5.18민주화운동을?진압한?전두환은
자신이 유리한 쪽으로 헌법을 개정한 후에야
비로소 대통령 자리에 오를 수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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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도 광주에서는 매년 5월 18일만 되면
제사를 지내지 않는 집이 없다고 할 정도로
?5.18민주화운동은 굉장히 많은 사상자를 낸 사건입니다.
여러분, 역사를 잊은 민족에겐 미래란 없습니다.
민주주의를 주장하며 싸우다
결국은 목숨까지 잃은 수많은 분들을 위해
우리는 그 날의 일들을?꼭 기억해야만 합니다.
<라잌스>